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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애틀역사] 10. 시애틀의 적색 공포


1910년대 세계1차대전이 끝난 후, 시애틀의 경제가 주춤거리기 시작합니다. 시정부가 더이상 배를 구입하지 않았고, 새로운 산업이 발전되지 않았습니다. 항상 번창하는 시애틀이 성장과 기회가 사라지고 있었습니다.

급진파 노동중심지인 워싱턴주에서 큰 선택을 합니다. 1919년 시애틀 총 파업입니다. 시애틀의 노동자 65,000여명이 파업을 했고, 2월6일부터 2월 11일까지 총 5일동안 일어났습니다. 임금인상이 주 목적이었고, American Federation of Labor(AFL)이랑 Industrial Workers of the World(IWW)가 합세했습니다.
하지만 파업위원회에서는 환경미화원이나 우유배달같은 필수서비스는 유지시키기로했습니다.



비폭력파업이었지만, 정부,언론 그리고 일반시민들은 사회시스템을 엎을려고하는 극단적인 시위라고 보여졌습니다. 몇몇 사람들은 볼셰비키(Bolsheviks)라고 지칭하고, 반미(Un-American)적인 행동이라고 꾸짖습니다.

"This is America - Not Russia!"

당시 시애틀시장이었던 Ole Hanson이 공산주의확산을 걱정하며, 적색 공포(Red Scare)를 일으킵니다. 1500명의 경찰들과 1500명의 연방경찰들을 이용해 진압을 시작합니다. 일부 언론과 대중들에게 찬양을 받습니다.

2월8일에 몇몇 노동자들은 일자리로 돌아갔고, 시장의 정책때문에 해고될 걱정에 돌아가기도 했습니다. 이날 위원회에서 파업종료 투표를 했지만, 성공하지못했고, 2월10일에 다시 투표해 2월11일에 파업종료합니다.

사실상 파업 시작자체에서 파업방식에 문제가 있었어 파업이 끝났거지만, 시장 Hanson이 파업종료했다는 성과를 거두고, 모든 영광을 받습니다. 이 성과로 7개월동안 $38,000(당시 시장직 연봉의 5배)를 받고 "Americanism vs Bolshevism"이라는 책을 출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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